William Butler Yeats, “A Drinking Song”

A Drinking Song

William Butler Yeats

Wine comes in at the mouth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and sigh.

술노래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드나니
우리가 늙어 죽기 전
알게 될 진실은 그뿐.
나는 술잔을 입에 들고
그대 바라보며 한숨짓네.

(번역: 지하서재)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 (1865-1939)

아일랜드 시인. 더블린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처음에는 화가가 되려고 하였으나 마음이 바뀌어 런던에 가서 시인들과 사귀면서 시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켈트 문학의 정서를 담은 첫 시집 [오이진의 방랑기 The Wandering of Oisin and other Poems](1889)를 내어 주목을 받습니다. 초기에는 라파엘 전파의 영향을 보이는 낭만적 주제의 환상적인 시들을 썼습니다.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1891년에 아일랜드 문예협회를 창립합니다. 1899년에는 그레고리 부인 등과 협력하여 아일랜드 국민극장(후의 애비극장)을 세우고 아일랜드 극 발전을 위해 힘을 쏟습니다. 극장 공연을 위해 [캐서린 백작부인](1899)을 비롯한 몇 편의 뛰어난 극작품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아일랜드 민족주의자 모드 곤(Maud Gonne) 등과 함께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힘을 보태기도 합니다. 1921년 아일랜드 자유국이 성립되고 나서는 상원의원이 되어 활동합니다(1922∼1928). 1923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평생 모드 곤을 사랑하였으나 짝사랑에 그치고 심령론(心靈論)에 관심을 두어 온 것이 계기가 되어 1917년에 무녀(巫女)와 결혼합니다. 후기시에서 심오하고 완숙한 경지에 도달해 그는 T. S. 엘리엇과 함께 20세기 초의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대표적인 시집으로 [갈대 사이의 바람 The Wind among the Reeds](1899), [책임 Responsibilities](1914), [쿨호의 백조 The Wild Swan at Coole](1916), [탑 The Towers](1928) 등이 있습니다.



William Butler Yeats: “A Drinking Song”

Drinking Song은 음주의 흥취를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면서 부르는 노래를 말합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권주가(勸酒歌)라고 합니다. 수많은 가인이 술노래를 불렀고 수많은 시인이 술노래를 썼습니다. 문화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이색적인 술노래가 있습니다. Drinking Song, 또는 권주가는 흔히 도취의 낭만을 찬양합니다. 도취는 현실의 제약과 억압을 벗어나 해방과 자유와 초월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매혹적인 정신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취의 경험은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 왔습니다. 도취의 경험을 가질 수 없다면 우리 삶은 삭막하고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술과 도취에 관한 서양의 시 가운데 우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것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프랑스 시인 사를르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취하라(Enivrez-vous)”와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술노래(A Drinking Song)”가 아마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예이츠의 “A Drinking Song”은 짧으면서도 술의 본질이 잘 표현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이츠의 이 술노래는 원래 독립된 시로 쓰여진 건 아니고 18세기에 쓰인 [주막집 여주인(La Locandiera)]이라는 이탈리아 극과 관계가 있습니다. 예이츠의 후견인이었던 그레고리 부인이 이 극을 영어로 번안하였는데 예이츠가 이 극의 여주인공 미란돌리나의 대사로서 이 술노래를 써 주었다고 합니다. 주막집 여주인 미란돌리나가 여자에게 관심을 둘 줄 모르는 한 선장에게 연정을 품고 그에게 술을 권하며 하는 말이 그 내용입니다. 이탈리아 원작을 충실한 영어로 옮긴 번역본의 그 대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Wine and love! With what sweet art
Each can lay our sorrows flat!
This goes down the throat, and that
Down the eyes to take the heart.
Look, I drink: and these eyes too
Then do straightway what yours do.

술과 사랑! 그것들이
우리들 슬픔을 아주 멋지게 씻어 버릴 수 있어요.
술은 목으로 넘어가고
사랑은 눈을 따라 내려가서 심장을 사로잡아요.
보세요, 난 마십니다. 내 두 눈도
똑바로 당신 눈길을 따라가고요.

여기에서 술과 사랑은 슬픔을 이겨내는 힘입니다. 술과 사랑이 슬픔을 “넘어뜨려 버리는(lay flat)” 솜씨를 여기에서 “아주 멋지게”라고 번역하고 말았지만 영어 원문은 그 솜씨를 “달콤한 기술(sweet art)”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술과 사랑은 둘 다 “달콤하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술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술은 마음의 고통을 이겨내게 하고 사랑은 외로움을 없애 줍니다. 술은 입안으로 들어가 마음의 고통을 잊게 하고 사랑은 바라봄[눈]에 호소하여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미란돌리나는 사랑을 할 줄 몰라 마음이 얼음짱 같은 사람에게 이처럼 은근하게 술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란돌리나의 이 술노래를 번안하면서 예이츠는 여기에서 술과 사랑의 기능을 더 중대하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바라보는 눈에서 싹트는데 그것이 늙어 죽기 전에 알게 될 유일한 진실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으며 세상 살다 보니 결국 중요한 건 그것뿐이더라는 것입니다. 시인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왔을 주막집 여주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발견한 삶의 진실을 넋두리처럼 토로하게 합니다. 평생 모드곤은 짝사랑했던 예이츠의 심정이 반영되어 있는 것일까요.

이 노래에서 특히 애틋하게 여겨지는 부분은 마지막의 “한숨(sigh)”이라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이 노래를 읊는 사람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술잔을 입에 들고 상대방을 바라보며 한숨짓습니다. 상대방은 사랑에 실패하여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사내인 것 같습니다. 그녀의 한숨은 어떤 한숨일까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안타까워하는 한숨? 아니면 사랑의 기대와 설렘에서 오는 한숨? 이 한숨이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미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술과 사랑에 취하는 일, 시인 예이츠는 미란돌리나의 입을 빌어 우리가 죽기 전에 알게 될 진실은 그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술과 사랑의 도취에 빠지는 일을 모든 이들이 찬양하는 것은 아니지요. 술은 마취제요, 도취는 도피일 수 있으며 도취의 시간은 영원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술과 장미의 날은 길지 않다(They Are Not Long)”는 시를 쓴 어니스트 다우슨(Ernest Dowson) 같은 이가 대표적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술과 장미의 날이 길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의 매혹이 더 강렬한 것도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