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fred Tennyson, “Ring Out, Wild Bells”

이 시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우리가 "제야(除夜)"라고 부르는 12월 31일 밤 자정에 송구영신의 종을 치는 관습이 있는데 테니슨은 어느 해 어떤 수도원에서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W. H. Auden, “Funeral Blues”

이 시는 애도시(elegy)의 일종입니다. 애도시는 보통 특정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를 말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실제 인물이든 가상의 인물이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를 다 포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라는 영화에서 낭송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다.

William Butler Yeats, “A Drinking Song”

술과 사랑에 취하는 일, 시인 예이츠는 미란돌리나의 입을 빌어 우리가 죽기 전에 알게 될 진실은 그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술과 사랑의 도취에 빠지는 일을 모든 이들이 찬양하는 것은 아니지요. 술은 마취제요, 도취는 도피일 수 있으며 도취의 시간은 영원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Horace, “Carpe Diem”

이 시에 나오는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은 "현재를 붙잡아라"라는 뜻의 라틴어로 영어로는 보통 "Seize the day." 또는 "Seize the present" 등으로 번역됩니다. 호라티우스 이후 이 어구는 현재의 충실한 삶을 강조하는 철학적 개념을 나타내는 말로 널리 쓰여지게 되었고 유럽 시문학의 중요한 주제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이 말이 인용된 뒤로는 대중 사이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E. Ward Herlands, “When Edward Hopper Was Painting”

시인은 호퍼의 그림에서 동시대적 삶의 공간과 시간을 느낍니다. 그와 동시에 그 그림 속에 배어들어 있는 이민자의 삶의 역사를 자기 것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그 삶의 역사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준 힘, 고독과 노동과 그것을 견디게 하는 인간적인 다정함을 이 그림에서 느낍니다.

Roger McGough, “You and I”

소통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시입니다. 시인은 “당신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소통의 어려움을 깨닫게 됨으로써 역설적으로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소통을 위한 첫걸음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 자신을 보려는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Jane Kenyon, “Otherwise”

시의 내용은 평이하고 단순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까지의 소박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학교에 다녀와 저녁에 잠을 잤다”고 쓰는 초등학교 학생의 일기와 비슷합니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나 체험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평범한 이야기를 한 편의 시로 만들어 주고 있을까요?

Linda Pastan, “Marks”

이 시는 여성이 가정 또는 사회에서 주어지는 역할로만 살지 않고 자신의 삶의 철학과 의지대로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일종의 페미니즘 시입니다.

Carl Sandburg, “Autumn Movement”

시인은 아름다운 것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변화와 상실의 슬픔을 노래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들었던 아름다움은 사라지지만 자연은 또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냅니다. 변화와 움직임이 모든 것을 잃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Robert Frost, “Fire and Ice”

프로스트는 사람들의 마음씀에 걱정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타락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인간의 삶이 끝장나고 말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끝장나는 방식에 대해 말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이래 생각하면 불로 망할 것 같고, 저래 생각하면 얼음으로 망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